더 문 - 임무 완료, 그러나 돌아가실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영화가 시작한지 채 5분도 안되어 오로지 한국 사람만이 경험할 수 있는 당황스런 시츄에이션에 직면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화면 뒷편으로 스치듯 지나가는 익숙한 한글 글씨 "사랑". 내가 뭘 잘못봤나? 아냐, 픽사 작품처럼 나라마다 영상 속 글씨를 다르게 바꿔넣는건가? 이런 별의별 생각이 다 들 때, 다시 한번 커~다란 글씨로 등장하는 글씨 "사랑". 거기다 주인공이 입는 유니폼과 각종 장비에도 "사랑" 로고가 한글로 박혀 있고 그 옆에는 때로 영어로 "sarang"이라고 적혀 있기도 하다. 도대체 이게 뭔 일인가 싶었지만 어쨌든 영화에 집중해야 하는 고로 열심히 영화를 보는데, 나중에는 아예 한국말로 "안녕히 계세요~"라는 대사까지 양키 배우 입에서 술술 나와 더욱 당황. 이거 뭔가... 제작사가 한국? 아님 감독이 한국 사람? 각본가가? 아니면 프로듀서가?.... 거기다 생각은 더욱 더 발전해 도대체 저 우주기지의 이름이 "사랑"인건 무슨 의도인가, 저 우주기지는 주인공을 가두는 장소 아닌가? 아니 잠깐, 주인공에게 사건을 은폐하는 악의 무리(!) 두 명 중에 한 명이 동양인이잖아? 그럼 뭐야 이거.... "지금 한국 사람 멕이고 있는 건가?!!"

그러나 영화를 다 본 다음 좀 찾아보니 우주기지의 이름이 "사랑"이고 대사에 한국어가 나온 것은 아주 단순히 이 영화의 영국인 감독 던칸 존스가 우리의 박찬욱 감독을 너무너무 좋아한 나머지 존경의 의미로다가 영화에 넣은 것이라고 한다. (거기다 감독이 한국어를 배우는 중이라고) 물론 이런 감독의 애정은 오로지 감독과 한국인만 알 수 있는 것인지, 세계적인 영화 사이트 imdb에서는 "일본계 회사"라고 리뷰에 적혀 있어 땀 삐질.. 하긴 코쟁이 애들 중엔 한글이랑 일본어 구별 못하는 애들도 많긴 하지... 아무튼 이런 감독의 넘치는 한글 사랑은 일단은 좋은 것 같긴 한데 영화 내용을 생각하면 진짜 좋은 건가? 싶기도 하고, 또한 한국 관객들이 편히 영화 감상을 하기에는 유감스럽게도 눈에 상당히 거슬리는 게 사실이다. 이건 뭐 심각한 장면에서도 수시로 유니폼 등 뒤에 떡 하니 "사랑" 하고 한글이 적혀있는게 눈에 띄니 뭔가 앗, 또 나왔네? 앗, 저기도 있네? 계속 이런 식의 태클이..;; 역시 아무리 그래도 한글이 외국 영화에 등장하는데 익숙해지는데는 좀 시간이 걸릴 듯 싶다.

영화 본래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 영화는 SF임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SF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행보를 선보인다. 빵빵 터지고 무너지는 SF를 기대한다면 한정된 우주 기지 공간 안에서 한명의 배우가 1인 2역, 후반에는 1인 3역까지 하는 굉장히 절제된 이 작품에 자칫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케일에 대한 기대감을 버리고 밀폐된 공간, 고립된 사람, 또 다른 누군가, 사건의 진실이란 핵심 스토리를 따라가면서 영화에 집중한다면 그 어떤 작품보다도 긴장감 있게 흐름을 쫓아갈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 영화는 익숙한 소재들, 그러니까 기억의 왜곡이라든가 또 다른 나, 고립의 공포, 존재에 대한 의문, 그리고 감정이 없는 컴퓨터의 등장을 적절히 버무리고 비틀며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는데, 결론적으로 보자면 결국 어디선가 본 내용을 이리저리 섞은 것에 불과하지만 이것을 진부하지 않게 풀어내는 것은 역시 감독의 역량과 배우의 훌륭한 연기 덕분이라 해야 할 것이다.  

사실 이런 식으로 배우 혼자 1인 다역을 해야 할 경우엔, 특히 다른 존재와 상호 작용이 전혀 없는 상황일 경우엔 배우의 연기력에 절대적으로 기댈 수 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주연 배우 샘 록웰의 연기는 그 옛날 [데드 링어]에서 쌍둥이 역을 혼자 완벽하게 소화해냈던 제레미 아이언스의 그것에 비견할 만한 수준이라 생각된다. 제레미가 [데드 링어]에서 소심하고 병적인 동생과 냉정하고 자신만만한 형을 정확히 구분해 연기했다면 샘 록웰 또한 혼란과 진실 속에서 점차 피폐해져가는 샘과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나 현실을 파악해가고 있는 젊고 혈기왕성한 샘, 이 두 인물을 정확히 구분하며 연기하고 있다. 특히나 눈에 띄는 장면은 두 샘이 서로 몸싸움을 하면서 피를 보는 장면이 아닐까 싶은데, 힘으로 일방적으로 이기는 젊은 샘과 싸움이라곤 전혀 못해 와방 두들겨 맞는 올드 샘의 연기를 한 사람이 해냈다고 생각하면 왠지 웃음이 슬슬 나오기까지 한다.

또한 샘 록웰 외에도 우리는 주조종 컴퓨터 "거티"의 기계음에서 탁월한 연기력을 발견할 수 있다. 기계이면서도 동시에 기계를 넘어선 감정이 있는 거티는 척 보기엔 샘을 조종하고 비밀을 은폐하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 마치 [월 E]의 조종 로봇 "오토"처럼 - 극 후반으로 갈 수록 홀로 고군분투하는 샘을 보며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비밀을 파헤치려는 그를 옆에서 도와주기도 한다. 심지어 자신을 리부팅할 것을 부탁하며 메모리에 남은 기록때문에 샘이 다칠까 염려하는 마음을 보이기까지 하면서 갈수록 거티의 존재는 영화 속에서 고립된 샘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후원자의 모습으로 변모한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보던 조종 로봇 캐릭터와 다소 다른 모습인데, 모든 것을 장악했고 기계로서 제 할 일만 하는 녀석인데도 마지막 순간에는 인간보다 더 큰 아량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오히려 샘만큼이나 인간미를 느낄 수 있는 캐릭터이다. 그리고 더욱 훌륭한 것은 거티의 이런 인간미를 보여주면서도 결코 "기계"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은 채 계속 대화를 이끌어간다는 점이다. 거티의 감정은 기계답게 매우 딱딱하지만 그 일정한 톤 속에서 미묘하게 사람의 감정이 읽혀진다. 그렇기 때문에 거티의 목소리 연기는 홀로 애쓰는 샘의 그것에 못지 않게 칭찬받아야 하는 부분이다. 영화 정보를 뒤져보니 아니나 다를까, 거티 목소리는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에서 마지막 한방을 보여줬던 연기의 달인 "케빈 스페이시"가 맡았다고 하는데 평소에 그의 차분하고 어딘지 모르게 뱀 같이 찹찹했던 목소리를 좋아했던 나로서는 올커니! 했던 캐스팅이었다.

한편 이 영화의 주인공들이 어떤 존재인지 그 정체가 밝혀진 다음에는 (눈치 빠른 사람은 애저녁에 알아차릴 듯) 자신의 기억에 얽매여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는 지구로 돌아가길 꿈꾸는 샘의 처지가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 인간이란 존재는 날 알고 인정해주는 이가 있을 때만 비로소 가치를 지닌다는 점에서 과연 그들은 지구에서 그런 가치있는 "존재"인지 의문스럽고 또 샘이 지구로 돌아간다고 해서 사람들에게 얼마나 자신들의 "존재"를 어필할 수 있을 것인가 또한 상당히 회의적이기 때문에 - 오히려 회사의 시각이 그랬듯 그들은 그저 부속품 취급 받지 않았을까? - 샘의 탈출길을 지켜보면서도 마음 한 켠이 아릿한 것이다. 인간의 존재란 "내가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그렇게 봐주는 것"으로 결정되는 것이니까 말이다. (예를 들어 거티가 "난 동정심이 있으니 인간이다!"라고 백날 주장해봤자 남이 보기에 거티는 그냥 로봇일 뿐이지 않는가)

자신의 존재와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샘의 모습은 일견 [공각기동대]의 쿠사나기와 비슷하게 보이기도 한다. 작은 뇌만 빼고 온 몸이 사이보그인 쿠사나기는 자기가 과연 인간인지, 혹시 자신의 뇌에 저장된 기억도 조작된 게 아닌지 깊은 고뇌에 빠져드는 캐릭터이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고 기억에 의구심을 갖는다는 점에서 결국 맥락은 같은 셈인데 쿠사나기가 또 다른 존재와 결합하면서 자기 정체성을 스스로 정립했다면, 샘은 우주 기지에서 벌어진 모든 사건을 지구에 폭로함으로서 반복적으로 폐품 취급받으며 부정당했던 자신(혹은 자신들)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다. 쿠사나기와 샘 모두 어떤 식으로든 자아 찾기를 위해 내달린 셈이다. 물론 이 영화 [더 문]의 결론은 [공각기동대]보다 더 잘 이해되고 곱씹으면 곱씹을 수록 스산한 여운이 느껴지지만 말이다.

여기서 "스산하다"는 것은 샘과 또 다른 샘의 존재가 어떤 방식으로 활용될 것인지 이미 규정된 채 세상에 태어났다는 점에서 출발하는 감정이다. 샘들은 분명 사람의 편의를 위해 이용되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들에겐 흔히 통용되는 "인간으로서의 존중"이 통하지 않을 것이다. 거티가 우주기지를 조종하기 위해 만들어진 로봇이듯 샘들도 인간에 의해 그 목적이 분명하게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니 도대체 샘이 지구에 날라가 "우리, 인권 침해 당했어요!"라고 주장해도 과연 그들에게 보통 인간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인권"이란 게 제대로 주워지긴 할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만약 샘의 절규를 듣고서도 "응, 알어. 근데 너희들은 그럴려고 달에 보내진 거야"라고 말한다면 그 때의 절망감은 과연 누가 보상해줄 것인가?

그러니 때론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다. 아마 샘은 3년 간 홀로 지낸 자신이 무척 측은했겠지만 진실을 알고난 뒤엔 더욱 측은해 미칠 지경이 됐을테니. 개인적으로 올드 샘이 젊은 샘보다도 더 안됐던 건 그 기억을 붙잡고 또 붙잡고 간절히 붙잡으며 과거의 그 누구도, 그 어떤 샘도 보지 못했던 가족의 "환영"을 봤다는 것이다. 얼마나 간절했으면... 얼마나 그리웠으면... 그것이 진실이든 아니든 간에. 그런 샘에게 넌 지금까지 헛 꿈 꾼거야, 라고 말하는 것은 참으로 잔혹한 일이다. 사실 올드 샘이 죽어가는 것은 3년의 폐기 기한 또는 사고의 여파 때문이 아니라 어쩌면 환영까지 봤던 그 '간절함'이 정면으로 부정당한 것의 충격 때문은 아닐까.

허니 결론적으로 이 영화의 원제 [MOON]은 그저 차곡차곡 샘들의 원혼으로 차여가는 거대한 무덤을 가리키는 말이 아닐까 싶다. 
지구에 돌아갈 필요 없는, 그러나 돌아가고 싶어하는 이들의 비극과 간절함이 가득한 "달 무덤".





by wineapple | 2009/11/18 00:32 | 영화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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